도서관에 신간이 들어왔길래 둘러봤다. 그 중에 '음식중독'이라는 직관적이면서도 호기심이 드는 책 제목이 있길래
집어보니 깔끔한 초록색 바탕에 인상적인 디자인이었다. 타이틀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먹고 싶어서 먹는다는 착각.'
그렇다면 사실은 먹고싶지 않은데 억지로 먹는다는 것인가?
호기심에 가득 차 책장을 넘겨봤는데.. 솔직히 인트로는 좀 별로였다.
패스트 푸드에 빠져 살던 사람들이 모여 패스트푸드 기업에 소송을 건 에피소드 였는데
미국 뚱땡이들이 요식업체에게 소송을 걸면서 망친 내 인생을 돌려달라고 악다구니를 지르는걸 보니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간 패스트 푸드를 죽어라 부어라 마셔라 해놓고 이제와서 뚱땡이가 되버린 내 인생을 책임지라며 거액의 소송을 걸다니
동아시아에 사는 나란 인간의 감성과 관념으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전개였다.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전개란 말인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누가 칼로 협박이라도 했단 말인가?
누군가 글록으로 머리통을 겨누고 매주 햄버거를 사서 먹지 않으면 네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협박이라도 한 것인가? 왜 그간 본인만의 선택으로 잘먹어놓고 이제와서 소송을 건단 말인가?
합의금을 받으면 그것은 무전취식의 또다른 형태가 아닌가?
오만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뒤죽박죽 섞어놓는 기분이었는데 거기에도 여러가지 배경들과 원인이 존재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려준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들 모두 이 책을 쓴 사람이 유도한 것이 아닐까
비만인의 대표와 앵커의 대화가 또 걸작인데
앵커 : 당신은 그간 패스트 푸드를 스스로 선택해서 잘만먹어왔지 않습니까?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테고 심지어 주치의가 패스트 푸드를 끊으라고 권고했음에도 듣지 않고 계속 드셨다면서요? 그런데 소송을 거신다고요?
대표: 예, 물론 그렇습니다. 제가 선택해서 먹어왔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패스트 푸드 업체에선 제게 그 음식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상식을 꼭 말해줘야 아냐..
뭐 이런게 미국쪽 감성일진 모르겠는데 이쪽은 유달리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를 일일히 제공해주지 않으면 네 잘못이라는 식의 논지가 좀 많은거 같다. 핵심주장은 패스트푸드 쪽에서 명확한 정보 제공을 해주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패스트 푸드에 중독이 되어 체형이 망가지고 인생이 하드코어해졌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론 솔직히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릴 하나 싶었다. 아니 니들이 먹은거잖아..
마치 메이플이나 리니지에 인생 갈아넣은 폐인들이 넥슨이나 NC소프트에게 인생을 돌려다오~ 이런 수준의 주장 아닌가
혹은 DC인사이드 인터넷 폐인들이 김유식씨에게 청춘을 돌려달라고 거액의 소송을 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느 쪽이던 이해하기 힘들다. 책임의 강제적인 전가라고 느꼈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담배의 사례를 들면서 서서히 밑밥을 깔기 시작한다.
요즘 2023년 한국에서 담배 중독, 니코틴 중독이란게 존재한다고 말하면 너무나 상식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허구한 날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금연 아니겠는가.
금단현상으로 신경질적이게 되고 다리를 발발 떨고 온몸이 가려워져서 박박 긁는 그런 담배 중독자들이 존재한다는게 이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과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미국에서 중독이라 하면 불법적인 약물(예컨데 코카인이나 필로폰 등 마약) 혹은 알코올 정도로 여겨졌는데 수 많은 법적 공방과 해석 끝에 담배 중독도 어엿한 중독의 일종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렇듯 '상식'이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중독의 일종이 세상엔 엄연히 존재했음을 작가는 이러한 담배 에피소드를 통해 알려준다.
음식중독이 헛소리라고 우릴 비웃는다고? 담배때도 그랬어 인마!
마치 이렇게 일갈하는 듯 하다. 솔직히 단순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음장을 넘겨서 책을 마저 읽었다.
이후 내용이 썩 가관인게, 인간이 어떻게 음식에 중독되는지 다양한 요인과 사례를 통해 접근하며
이러한 요인을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중 특히 흥미가 깊었던 구절은 식욕은 위가 아닌 뇌에 있다는 점이었다. 위 절제수술을 받아서 위가 주먹만해진 남자가
자신이 즐겨먹던 간식을 끝까지 포기못하고 죽어라 뱃속에 욱여넣다가 결국 배가 터져서 담즙이 흘러나오고 진짜 죽을뻔 했다는 에피소드였다. 다행히 수술을 통해 살았다지만 목숨이 위험해도 식욕은 포기못한다는 음식중독의 일면을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였다. 그런데 이 자식.. 위 절제 수술을 받고도 위가 터질때까지 간식을 쑤셔박는다..? 이건 그냥 이 남자가 심각하게 멍청한 놈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의느님이 보우하사 목숨을 건졌다지만 솔직히 그대로 죽었다면 다윈상 후보로 올랐을 만큼 멍청한 죽음인거 같다. 세상에 위절제 수술을 받고 음식을 쑤셔박다 내장이 터져 죽는 죽음이라니..
뭐 이 이후론 계속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뇌 안에서 보상으로 작용한다는 점. 음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보상행위로 작동하기에 인간은 그것을 갈망할 수 밖에 없다는 구조를 지적한다. 몸무게를 위해 먹은 음식물을 억지로 토악질을 해내던, 혹은 하루에 몇 km를 달려가며 열량을 태우건 어떤 식으로든 체형을 날씬하게 유지하고 있음에도 음식에 대한 집착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사람들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음식이란 대가를 치루면서도 먹고 싶은 그런 존재임을 말한다.
과식의 중독성이 여타 마약류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비견될 수준으로 강력한 중독성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책 어느 페이지였나 과식의 중독성을 숫자로 표현해준 부분이 있었는데 담배였나 마약이었나, 약물의 중독성이 85 언저리라면 과식은 74정도 였나 그랬다.
즉 스스로의 의지로 과식 혹은 식욕을 멈추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어린시절 기억, 과거의 기억은 우리에게 그리움이자 하나의 이정표로 작용하기에 음식에 관한 어린 시절의 기억 또한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았다. 그렇기에 식품 관련 사업에서 우리의 유소년기 혹은 청소년기에 음식에 관한 경험을 심어주려 노력한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청소년기/유소년기에 유독 맛있게 먹었던 햄버거에 대해 강한 기억, 혹은 생일 파티때 패스트 푸드 집에 가서 먹었던 감자튀김에 대한 추억이 남아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웠다.
그리고 보상작용과 추억작용이 함께 어우러질 때에 음식에 앞서서 브랜드 자체에 중독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간악한 패스트푸드/요식업체의 계략을 낱낱이 파헤친다고 하는데..
이거 그냥 영업전략의 일종이 아닐까.. 딱히 잘못한건 없는거 같은데? 이런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뭣보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전략을 세웠다고 해도 소비자가 해당 기업에 열렬한 팬이 되어서 음식을 좋아하고 푹 빠진다는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해당 책에선 자꾸 음식 중독은 분명 실존하며 간악한 패스트 푸드 기업과 요식 업체에선 음식 중독과 관련된 부분을 자극하여 브랜드건 과식이건 중독시키려 노력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솔직히 위험성이나 악의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인구의 비만율 40프로가 넘는 뚱땡이 대국 미국에서는 피부로 와닿을 정말로 심각한 문제겠지만 인구의 5.9프로 언저리에서 맴도는 한국인이 읽기엔 썩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 설득력이 부족했다.
물론 음식중독이나 기업체의 전략같은 부분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너무 과장되어 있다고 느낀다.
음식중독의 위험성이 그렇게 정말로 컸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은 진작 뚱땡이가 되어서 패스트 푸드 기업의 지배를 받으며 삼시세끼를 싸구려 버거만 먹으면서 사는 사이버펑크 세상이 도래했을 것이다.
현재 전세계 BMI30 이상의 비만인은 24프로, 약 19억 1400만명인데
동아시아 쪽은 유달리 비만 비율이 적은 동네라서 딱히 체감이 안된다. 한국 5.9프로, 일본 4프로, 중국 14.6프로(??)
동아시아인인 본인 입장에서 느끼기엔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엄살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미국의 비만률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 이유는 소위 말하는 음식 사막, 급식의 민영화로 인한 질 좋은 야채와 양질의 식사를 하기에 지갑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싸구려 레토르트만 먹어서 발생하고, 서양인이 더 췌장이 튼튼한 체질이라 당분이 풍부한 밀크쉐이크등을 죽어라 마시는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빚어지는 것이지
단순히 음식중독과 패스트푸트 기업의 전략만으로 빚어지는 참사는 아닌거 같다.
까놓고 비만인 대표가 말한 것처럼 패스트 푸드점에서 모든 정보를 공시해놔도
패스트 푸드에 중독된 인간들이 그걸 거들떠나 볼까?
보고 정신 차려서 패스트 푸드를 끊을까? 기껏해야 다른 체인의 패스트 푸드점으로 떠나거나
또다른 종류의 레토르트를 먹으러 갈 것이다.
'이 정도로 몸에 안좋습니다.'라는 정보를 올려놔봐야 애써 무시하겠지 갑자기 대오각성해서 내 몸의 건강을 챙기겠어! 하면서 비싼 샐러드를 집어서 마트 카트 안으로 넣을거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잘들 먹어놓고 왜 그래! 그간 실컷 먹어놓고 이제와서 날 중독시킨 너희의 책임이니 모두 물어내라는건 대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구!
점차 비만인 인구가 늘어나는 지구촌.. 특히 그 중에 뚱땡이들이 득실거리기로 유명한 비만대국 미국에서 이런 문제는
정말 크게 와닿을지도 모르겠으나 동아시아 한켠 한국에 사는 내 입장에서 이런건 좀 너무 갔다는 생각이 들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