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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8년 여름. 막 우리가 병장이 되던때였다. 알다시피 병신같은 군생활은 상병때 컨텐츠가 다 고갈되기 마련이다.

그런고로 병장을 찍을 때 쯤엔 무슨 병신짓을 해도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재미도 없는 일상감에 푹 젖어서 살게된다.

그저 누구 후임이 무슨 병신 짓을 햇다라는 미담만 가지고 며칠 동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할 뿐이다.

그 날도 언제나처럼 어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높으신 분의 심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강제로 차출된 20대들이 낙엽을 찰지게 쓸고 있었다. 바닥을 쓸면서 이 놈의 군생활은 왜 이리 지랄맞을까 한탄하던 도중 바닥에 발랑 엎어져있는 사슴벌레를 보았다.

맨처음에는 흥미로워서 주워봤는데 이미 생명이 다꺼져가는 간당간당한 밧데리마냥 희미하게 붙어있기에 곧 죽겠군 싶어서 근처 나무에 붙여놨다.

극락 왕생하도록 아멘.

그런데 마당쓸기를 끝마치고 생활관으로 올라오자 아까봤던 사슴벌레가 책상 위에 있었다. 알고보니 경상도 동기가 내가 줍던걸 유심히 보더니 다시 주워온 것이였다. 언제나처럼 제정신이 아닌것 같았다.

벌레를 왜 키우냐며 상당한 짜증을 내던 동기들도 자꾸보니 귀엽다며 키우기를 동의했고 아예 이름까지 즉석에서 만득이라고 지어주었다.

만득이의 집은 다먹은 믹스파티 통이 되었고 먹이는 누가 어디서 구해온지도 모를 오뚜기 꿀이 되었다. 무료한 군생활이 흘러흘러, 어느세 생활관 인원들은 만득이를 사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 27사단 특성상 훈련이 좆빠지게 많았기 때문에 만득이를 생활관에서 보는 일은 적었지만, 매 훈련마다 부상자들이 잔류를 했고, 그 놈들이 만득이의 전담관리를 맡게 되었다. 훈련이 끝나 자대에 복귀해서 생활관에 짐을 풀때마다 만득이의 집은 증축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만득이의 집은 초 세레브해져있었다. 왠만한 부유층 벌레는 꿈도 못꿀 2층 페트병 복층 집에 바닥엔 촉촉한 화악산 부엽토가 깔려 있었고 어디선가 주워온 나무토막에 늘 삼시 세끼 꿀을 먹고 살아갔다. 야생에서는 상상도 못할 훌륭한 대우였다. 거의 곤충계의 타워팰리스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야행성인 만득이가 밤만 되면 간헐적으로 탈옥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분명 모든 구멍을 다막아놨는데 텔레포트라도 쓰는지 사라져선 그때 그때마다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거의 우리 군생활의 동반자가 되어가던 만득이. 우리는 2층에 있는 본부 중대에 암컷 사슴벌레가 있는데 짝짓기를 시켜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밥도 멕여주고 재워주고 쎆쓰까지 시켜주는 우리는 내가 생각해도 존나 착한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제의를 승낙했고 만득이를 데려갔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2층에도 같은 종 암사슴벌레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역시 군대는 병신같은 곳이다.

짝짓기는 수월하게 진행됬으나 문제가 하나 있다면 끝난 후 동기가 만득이를 들어올렸을때 얼싸를 당한 것이었다.

뭐 암튼 세월은 흘러흘러 두 달이 지났다. 어느날 훈련을 복귀했는데 만득이가 뒤져있었다. 왜 죽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명이 다한 것 같다.

만득이의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남겼다. 사흘이 지나 나는 새벽 탄약고를 복귀하다가 톱사슴벌레를 잡아왔다. 그 날 아침 일어난 동기들은 톱사슴벌레를 보더니 좆같이 생겼다며 만득이는 귀여웟는데 이건 못생겨서 키우기 싫다며 짜증을 냈다.

 

못생기긴 했다 ㅇㅈ

 

결국 톱사슴벌레는 방생되었고 만득이를 잊지못한 우리는 다양한 벌레를 키워보려했다. 나방이 군장에 깐 알무더기를 부화해보겠다고 날뛰던 동기나 여왕벌을 잡아온 병신새끼도 있었지만 그 무엇도 만득이만큼 귀엽거나 애정을 받지 못했다

만득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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