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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진중권은 창의성과 그에 반하는 합리성에 대해 둘을 갈라 세우는 기준점과 사례들을 들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창의성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누가 그것을 정하고 규격 하는가?’, ‘창의성을 규정하는 순간, 이미 창의성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책에선 배열의 순서를 바꾸어 전혀 다른 단어를 만들어내는 애너그램처럼 모든 존재에게는 표상적인 대표적 의미와 그와는 전혀 다른 타자성의 의미가 공존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 시켜준다.

 

합리성의 이면에는 창의성이, 창의성의 이면에는 합리성이 존재한다. 주사위를 던져가며 창작을 해온 서양의 많은 예술가들의 알레아토릭부터, 잭슨폴록의 우연에 의존한 드롭 핑은 오직 우연과 창의성만을 의존한 것 같지만 레닌의 초상에서 볼 수 있듯이 창의성에서 일정한 규칙이 존재할 것이라는 합리성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체스라는 그 합리성의 틀 안, 기물의 움직임에서 추상의 가능성을 엿볼 수가 있다. 중세 시대의 광우에게서 어리석음과, 세상을 초월한 진리의 단편을 엿볼 수 있듯이 이렇듯 세상은 합리성이나 창의성처럼, 딱 잘라 어느 단편적인 틀만으로는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동양의 도가쪽 사상과도 맥락이 어느 정도 통하는 것으로, 극에 치우친 것은 다시 반대의 극에 수렴하게 된다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취지의 물극필반의 이치와 상반된 특성이 공존되고 있다는 정중동’,‘동중정의 이치를 쏙 빼닮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카오스모스적인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진중권은 그것을 상상력으로 꼽았다. 풍경과 얼굴의 경계를 허물고, 그림자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힘. 분명 세계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늙음과 젊음,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추악한 오탁부터 지고의 쾌감까지, 천태만상의 세계를 내포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읽어내고 소화해 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다. 현 시대와 미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상상력임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17세기부터 내려온 합리성의 관념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 속에 단단하게 고정 되어있기에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타인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창의성이 대대적으로 부각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이지만, 훨씬 더 오래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합리성과 창의성이 공존하는 패러독스가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풍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선조들은 통념적 관점을 바꾸어 보기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과연 연속성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사진과 회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같은 수많은 질문들이 던져졌고, 각각 그 질문의 관점에 걸맞는 결과를 불러왔다. 기존의 자연의 모습을 모방하는데 주로 노력하던 미술은 사진의 발명에 의해 그 빛을 잃을 뻔하였으나, 이는 추상회화의 대두와 발전을 불러오게 되었다. 또한 연속성을 잃은 모습은 몽타주 기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책의 내용은 수업시간에 들었던 창조성은 타자성으로부터 기인한다라는 문장과 맞물려 수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과연 타자성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창조성이란 반드시 타자성으로부터 기인하게 되는 것인가? 책에서 말한 합리성과 창의성이 서로의 이면에 존재했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은 아닐까? 상반된 서로의 내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타자성의 결핍을 낳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책들이 조목조목 짚어주는 사례를 살펴보다보면 그 의문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통점을 가진 사진과 그림에서 타자성이 추구되어 추상회화가 탄생되었듯, 서로의 공통점 속에서 타자성을 추구할 때, 비로소 창조성이 탄생되는 것이다. 굳이 다름만을 찾아 다닐 필요도 없고, 공통점만을 찾아 다닐 필요도 없이 앞서 말했듯 극단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공통점과 타자성은 서로를 서로가 포괄하며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충분히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포괄하여 나타내는 문장은 모든 것은 서로 닮아있으며 또한 각기 전부 사소한 차이가 있으며 이 서로 다름이 공존할 때는 창의성과 미의 품격이 존재한다.’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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